“하아……! 역시 라이젠이 좋네요.”
우리는 에르딘의 세례식 이후로도 수도에서 한 달을 더 머물렀다가 라이젠으로 돌아왔다.
필리악 산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나는 고향에 돌아온 듯한 기분을 만끽했다.
수도에는 온갖 편리한 것들이 있었고 다양한 물건을 살 수도 있었지만, 나나 킬리언이 진심으로 애착을 느끼는 곳은 라이젠이었다.
그러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필리악 산의 상쾌한 바람뿐만이 아니었다.
“예상은 했지만…… 일이 엄청나게 쌓였네요.”
“예상보다 수도에서 오래 머물렀으니까요.”
나와 킬리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늑장 부릴 생각은 없었다. 우리는 갈 길이 급했으니까.
우리는 의료보험 홍보에도 열을 올렸고, 필리악 산길 개발 사업에도 박차를 가했다.
영지 내의 치안을 위해 마을마다 치안소를 두었고, 영지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치료소를 위해 의원과 간호사들도 모집했다.
처음에는 젊은 영주 부부가 쓸데없는 짓을 벌인다고 불만스러워하던 사람들도 점점 나아지는 영지 생활에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아직 모든 게 걸음마 단계였지만, 나는 내가 꿈꾸던 것들에 조금씩 다가가는 것 같아 하루하루가 더없이 행복했다.
점점 증설되는 치료소를 확인하러 갔을 때의 일은 아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영주 마님, 감사합니다.”
비쩍 마른 여자아이 하나가 길에서 갓 꺾은 듯한 노란 꽃을 나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유채꽃 비슷하게 생긴 잡초였지만 소녀의 미소만큼이나 예뻤다.
“어머, 예뻐라. 나한테 주는 거니?”
아이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보더라도 병색이 완연한 아이였지만, 소녀의 커다란 두 눈에는 초롱초롱한 빛이 어려 있었다. 어디선가 저렇게 맑고 예쁜 눈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구나. 꽃병에 꼭 꽂아 놓을게.”
그 말에 아이는 부끄러운 듯 몸을 배배 꼬더니 이내 뒤에 있는 제 엄마에게 뛰어가 버렸다.
내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는데 보좌관인 알텐스 경이 곁에서 작게 말했다.
“크로소 병에 걸려 죽어 가던 아이입니다. 저 애의 부모가 의료보험을 위해 적극적으로 공역에 참가한 덕분에, 치료소가 세워지자마자 아이가 치료받을 수 있었죠.”
“아……!”
“완치를 말하기는 아직 섣부릅니다만, 많이 건강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저 아이의 사례를 보고 주변 사람들 역시 의료보험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습니다.”
알텐스 경의 설명이 얼핏 들렸는지, 아이의 엄마가 고개를 조아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이 아이는 저희 부부가 사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의료보험이 아니었더라면 도저히 치료비를 댈 수 없었겠지요. 영주님과 영주 마님의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 말에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리고 그제야 아이의 저 예쁜 눈망울을 어디서 봤었는지 기억났다.
제 엄마의 치마폭 뒤에서 고개를 빼꼼히 꺼내 웃는 그 아이에게서 나는 오빠의 골수를 이식받는 나를 부러워하다 죽은 그 아이의 모습을 겹쳐 보고 있었다.
“에디트? 무슨 일 있습니까? 왜 눈물을……!”
뒤늦게 내 곁에 다가온 킬리언이 나를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진짜 눈물이 좀 나 버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더없이 행복했다.
오랜 죄책감을 이제야 조금 덜어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엄마! 릴리아가 자꾸……!”
“오빠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