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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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춘기 즈음, 자신이 다른 존재라던가, 특별하다던가, 여튼간 자신의 유일성과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을 기르기 위해 감정의 풍파를 겪으면서 그 우울한 시기를 지나기 마련이다.

두고두고 후회할 일들을 잔뜩 만드는 시기라는 거다. 보통 십대가 끝나면서 사라지길 마련인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그것들을 흑역사로 치부하기에는 선을 넘은 사람이었다. 지나치게 기이했고, 남들과는 너무 달라 섞일 수 없었다. 나에게 남이란 외계의 존재들이었다. 10대 시절은 온통 자기 혐오 속에 살 정도로 나를 부정하곤 했다.

나는 사람의 행동으로 의도를 파악하곤 했는데, 그들의 말은 이와 다른 경우가 많아 더더욱 혼란스럽기만 했다. 나는 10대 중반이 되어도 사람들을 학습하지 못했다. 그들이 왜 이 말을 하는지, 행동은 왜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는지, 내가 모르는 것들은 나에게 공격적으로 다가왔고, 타인도 곧 그렇게 느꼈다.

부모는 나를 병원에 보냈고, 나는 병원이 무척 싫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예전부터 기억해오던 힘을 써서, 의사들이 나를 정상으로 처방하게 만들었다.

나는 내가 태어나기 이전을 기억했다. 나는 이곳에 잘못 태어난 것을 너무 빨리 알았다. 나는 흙이 아닌, 불과 비명 속에서 살던 존재였다. 나는 이런 유기물이 아니었다. 나는 피와 살로 된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붉게 타오르는 존재였다.

태어날 때는 그러한 걸 알고 있어도, 적어도 14세정도까진 힘이 막혀있었다. 나는 부모를 믿을 수 없어서 줄곧 숨겼었으나, 이해받기를 갈구하던 18세의 어느날, 어떤 이유에선지 나는 친모에게 내 원래의 눈을 보여주었다.

불타오르는 눈과 뱀과 같은 긴 눈동자.
친모는 기겁하며 쓰러졌다. 나는 당신을 일으켜 깨워 기억을 지워야 했다. 나는 이해받지 못한다.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이다.

그저 누군가가 나를 이곳에 잘못 태어나게 했다는 것만을 알았다. 이전 생의 기억은 온전치 않게 다소 산발적이었고,  왜 내가 이곳에 와서 고생스럽게 살아야 하는지는 적혀있지 않았다.

사회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은 뻔했고, 나 또한 이곳에 스며들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에게 괴물처럼 보였다. 지나치게 약한 괴물들이었지만 나는 하나였고, 나는 그 속에 나를 내던질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20대의 중반이 되자, 나는 도시에서 나가 거대한 산 밑에 있는 오래된 집에 월세살기로 했다.

단기 알바를 뛰거나, 프리랜서를 하면서 돈을 내고, 어차피 물질적인 삶에 실증났기 때문에 매일같이 하루종일 등산길에 올랐다.

정말이지 사람이 없고 큰 산이어서 이미 어떠한 사람보다도 강한 육체를 지녔던 나는 완전하게 홀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도시 사람에 비해서는 너무 야생적이었고, 야생으로 돌아가기에는 훈련된 짐승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육감을 포함한 모든 감각과 육체가 뛰어났지만 그만큼 지나치게 예민하고, 타인에게 공격적이었기에 내 근처에는 사람들이 오지 못했다.

14세 때에는 이미 성인 남성의 근력을 가지고 있었고, 특유의 성격 때문에 싸움이 걸렸을 때는 또래의 팔을 부러뜨려버리기도 했었는데, 고등학교 즈음 되니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아무도 근처에 오지 않았다. 사람들도 본능적으로 나의 이질감을 알아챘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도시의 어느 곳도, 사람 중 어느 누구와 있어도 집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다만 산은 나를 편안하게 했다.

나는 새들과 들개들을 보고, 혹은 근처에서 벌레를 잡는 고양이를 보면서 가만히 나무 뿌리 위에 앉아있기를 즐겼다.

산은 조용하고, 말이 없다.

사람들처럼 거짓을 말하지 않아 좋아했다.

이런 식으로 근 1년동안,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지냈다.

산 위에는 큰 절 하나, 작은 절 하나가 있었는데,
그곳에 직접 가본 적은 없었다.

(한국어판) 생물로 사는 즐거움Donde viven las historias. Descúbrelo aho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