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Moonl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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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음을 재촉한 끝에, 동이 틀 무렵에는 산 아래 마을에 닿을 수 있었다. 사람의 흔적이 거의 닿지 않았던 만큼 마을로 가는 길을 알 수 있는 이정표라던가, 하다못해 인적을 유추할 수 있는 발자국 조차도 없던 산이었다. 그녀는 마을 앞에서 기절할 수 있던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꿈에서 동족의 원망과 불안정한 미래, 그 끝에 자신의 파국까지 본 그녀는 모든 것이 정해진 뜻-이를테면 운명과 같은-이라면 좀 가혹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자신이 살아있는 형태가 아닐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다행이 그녀는 살아있었다. 마을 앞에서 쓰러져있던 그녀를 한 아낙이 데리고 와 깨끗한 옷을 입히고 재워두었다. 여자가 일을 나간 사이에도 세상 모르고 자고 있던 그녀는, 집주인의 아들이 열흘만에 귀가하여 호들갑 떠는 소리에 눈을 떴다.

  "세상이 어느 때인데, 뭐하던 사람인 줄 알고 막 데려와요. 어머니 너무 경솔하신 거 아니에요?"
  "이놈아. 내가 사람 돕는 데에 경솔이고 자시고 따지라고 가르치던?"
  "그런 건 아니지만요. 요즘 세상이 영..."
  "헛소리 하지 말고, 저녁상 보고 있을테니 일어나면 나한테 말이나 전해. 알았어?"
  "아니, 그럼 일어날 때까지 나더러 저 방에 있으라구?"
  "지 까짓도 사내라고, 같은 방에 있음 뭔 일 낼까봐 그랴? 참 내. 그래, 들어가서 봐라. 곱기는 또 곱더라. 참말 뭐하던 아가씨인가 몰라."
  "아, 어머니! 내가 무슨 그런 뜻으로 말했다고. 밥이나 줘요!"

  벌컥 방문이 열리고 한 청년이 들어왔다.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그 남자를 가만히 보았다. 이미 일어나있을 것이라고 생각 못했던 남자는 너무 놀라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 저... 그게... 그녀는 남자를 빤히 쳐다보다 밝게 웃었다. 아니, 그건 단지 미소가 아니었다. 여름의 진한 냄새, 햇빛에 잘 익은 여름 복숭아같은, 정신을 아찔하게 만드는... ...
  "나, 나와서 식사하세요!"
  방문을 부술듯 세게 열고 남자가 나갔다. 여자는 한참 그 문을 보고 있었다. 방문 뒤 노을진 하늘, 남자의 등그림자가 한참 벽을 기대고 서있었다.

  * * *

  청록이 더욱 짙어갔다. 계절은 여름의 색으로 보다 선명해졌다. 계절이 지나며 그녀는 어느정도 사람의 구색을 갖춘 것처럼 보였다. 근방의 환자를 모두 진찰해본 적 있던 의사는 그녀의 빠른 회복력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근래 그녀가 웃는 얼굴이 눈에 띄게 늘었다. 부상 당한 그녀를 구해줄 뿐만 아니라 식솔로 받아준 집의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과 서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근래 그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이런 일상의 너그러움 뿐만 아니었다.

  "아가씨. 선생님께서 찾으세요."
  "나를?"
  "네. 지금 안으로 오라고 하시네요."

  어린 몸종이 그녀에게 말을 전하고 물러났다. 그녀는 기쁜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남자는, 그녀가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 바깥에서 유학중이었던 둘째 아들이었다. 다시 귀택한 것은 얼마 전의 일이었는데, 폭염에 대비해 휴가를 얻은 것이라고 했다. 대화를 종종 나누긴 했지만 그녀를 대하는 남자의 태도는 약간의 어색함, 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단둘만 있는 것은 어쩐지 피하곤 했었는데 갑작스런 전갈이, 어쩐지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찾으셨어요?"
  "응. 어서 와."
  "무슨 일이세요? 바쁘실텐데."
  "아니, 별 건 아니고... ... 혹시 요즘 밤에 잠을 못 자?"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굳은 표정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그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요즘 밤에 밖으로 나가는 것 같아서. 혹시 몸이 안 좋아 그러는 거라면 의원을... ..." 아니에요. 그녀가 말을 끊었다. 안면에 당황한 기색이 희미하게 남아있었지만 애써 웃음기로 가리고 대답했다.

  "요즘 달이 참 예뻐서요. 그래서 그래요."

* * *

  구름에 반쯤 먹혀 깊은 숨을 토해내는 월광의 밤, 그녀 또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늦여름 밤의 눅눅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았다. 산은 모든 것을 보고도 고요하게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마찬가지입니다."

  털이 쭈뼛 서는 듯한, 날카로운 울음이 온 산에 울려퍼졌다. 늙은 여우가 눈짓하자 용맹한 전사들이 단숨에 도약했다.
  산은 모든 것을 보고도 고요하게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드넓은 벌판 아래 상처 입은 여우들이 줄지어 쓰러졌다. 그녀 또한 상처 입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내 자세를 고쳐잡고 대적하는 자들과 맞섰다. 평생을 자연과 맞서 싸운, 먹이사슬에서 이름을 지켜낸 자들이었다. 그리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싸울 수 있는지 계산하며 전투에 임할 여력이 없었다. 쓰러지면 죽을 뿐이다. 아니,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을 잃을 뿐이었다.

다시 한 번 여우들이 그녀를 덮쳤다. 민첩한 속도로 날카로운 발톱이 공기를 가르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다른 힘이 있었다. 정기의 흐름이 형체화되면, 적들을 뚫고 솟아올랐다. 동족의 피가 튄다. 이 싸움이 끝나면 남은 것이 무엇일까. 잡념을 지우려 해도 그녀는 남는 것이 없을 이 행위에 오히려 정신적으로 지치기 시작했다.
그 때 일격이 그녀의 심장을 덮쳤다. 달이 구름에 가려져 어두워진 그 순간이었다.

<2. Moonlit> fin.
league of legends fan fiction
Title. 우리가 계절이라면
Written by own 2017-01-31 ~

우리가 계절이라면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