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Leave a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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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들은 그녀의 남은 숨을 모두 끊지 않았다. 우연한 실수였을 지, 아니면 동족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을 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또 한 번 살아있었다. 그러나 싸움이 끝난 후에도 살아있음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겠는가. 피칠갑이 된 손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온 몸이 각자만의 고통을 아우성치고 있는 것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도 일어나야만 했다. 달이 예뻐서, 그래서 밤산책을 나가야 한다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언젠가는 나도 불러줘요."라고 말해줬던 그는, 그의 가족들이 평안한 밤을 보냈을까 확신이 들지 않았다.

  절뚝거리는 다리로 힘겹게 산을 내려왔을 때, 마을 전체를 메운 검은 연기에 그녀는 아무런 표정도 지을 수 없었다. 숲의 짐승들이 민가를 습격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인간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적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미약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족을 배신하고 '인간'이 되려 술수를 부린 자의 최후는 '복수'로 돌아왔다. 그들은 가족을, 전사를, 동족을 잃은 분노를 인간에게 되갚아주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이들이 우는 소리, 드문드문 피어오르는 불꽃, 무너지는 비명소리... ... 아수라장 사이를 걷는 그녀의 한 걸음 걸음마다 피가 흐르는 고통이 느껴졌다. 누구라도 이게 꿈이라고 말해주기를. 이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줬으면.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세게 잡고 끌어당겼다. 상처가 짓눌려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익숙한 향이 느껴졌다. 그녀를 안은 남자의 손은 두려움에 떨리고 있었지만 오히려 위로와 안도의 말을 던졌다.
  "다행이다. 보이지 않아서 걱정했다... ... 살아있어 정말 다행이다."
  "... ...다른 사람들은."
  "... ...네가 살아서... ... 정말 다행이다."
  마음으로는 수천 번도 더 울었겠지만 제대로 그럴 수도 없었다. 내게 나약한 눈물을 흘리는, 그런 게 허락받을 수 있는 일이던가.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를 끌어안았다. 내가 살아서 다행이란 말에 조금 기대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녀가 꽉 껴안을수록 점점 남자의 팔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조금 뒤였다. 이상한 기분에 그녀가 그의 어깨를 밀어 품에서 떨어지자, 피가 흥건하게 쏟아지며 털썩 쓰러졌다. 그를 안은 피칠갑의 손은 다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자 여우 한 마리가 두 사람을 보고 있다 도망쳤다. 기습이었다. 방금 전 그 여우가 그를 죽이고 간 것이었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제야, 자신이 그 숲에서 죽지 않은 모든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왜... ... 왜, 왜. 일어나봐요. 눈 떠요. 일어날 수 있어요?"
  "사실은. 사실은... ... 알고 있었어."
  "말하지 마요. 제발. 가서 사람을 데리고 올게요."
  "늦었어. 들어 줘... ... 알고 있었어, 나. 네가 어느날부터 그 숲에서 여우들과 싸웠다는 거."
  "그만 말하라고! 살아서. 살아서 들어줄게. 제발 죽지 마."
  "아리야. ... ... 이름 부르니까 좋다."
  "필요없어. 당신을, 당신 가족을 지키는 건 당연한 일이었어... ... 그러니까 제발."
  "아리야. 살아서 정말 다행이야. 하지만 역시... ... 또 다음 계절도 함께 하고 싶었는데... ..."

  필멸자는 그 말을 끝으로 모든 어린 생을 마무리지었다. 그녀는 비로소 모든 감정을 토해내듯 크게 울었다. 지켜야할 것을 모두 잃고나서야 감정이라는 것을 알았구나. 삶에는 웃음만이 있는 것이 아닌데, 어찌 모든 것이 잘 될 줄 알았을까. 그녀가 몸을 천천히 구부려 그와 포개진다. 불똥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다음 계절도."
  "... ..."
  "함께할 수 있어요."

  언제나, 함께하는 거예요. 내 속에서.
  고통의 밤이 지나갔다.

<3. Leave a name> fin.
league of legends fan fiction
Title. 우리가 계절이라면
Written by own 2017-01-31 ~

우리가 계절이라면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