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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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하지 않고 선 에디트의 발그레한 귀 끝이, 벌어진 입술이, 가녀린 목덜미가, 곡선을 그리는 어깨와 가슴골이 아찔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자각과 함께 찾아온 민망함과 당황 때문에 킬리언은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어머니의 일을 잘 돕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처럼만 하라고,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라고.

그리고 에디트가 루아얄 의상실에 옷 수선만 맡겼다는 것도 떠올라서 다른 의상실을 불러도 좋다고도 말했다.

물론, 신사적으로 말하지 못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설마하니 그 여자에게 비난받을 줄은 몰랐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당신이 그냥 나를 미워하는 것뿐이잖아요. ……내 탓으로 돌리려는 이유는 알겠어요. 그래야 당신 마음이 편해지겠죠.”

“비겁해요.”

왜 그런 말까지 들어야 했을까.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관자놀이가 욱신거려왔다.

“당신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킬리언. 아무것도.”

그 말을 하던 그 여자의 얼굴은 왜 그렇게 슬퍼 보였을까.

그리고 그녀의 말이 맞았다.

킬리언은 에디트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처음부터 그는 그녀를 ‘리겔호프 백작의 딸’로밖에 보지 않았고, 그녀에 대해 짐작하는 모든 것은 리겔호프 백작에 대한 기억에 기반했다.

“윽…….”

관자놀이에서 시작된 통증이 머리 전체로 퍼져가더니, 두개골이 깨질 듯이 아팠다.

“킬리언……?”

그리고 어디선가 리제의 목소리가 들리자 지끈거리던 머리가 점점 괜찮아졌다.

“리제……?”

킬리언과 클리프의 대련을 구경하러 종종 오곤 하는 리제가 오늘도 연무장으로 가는 길인 모양이었다.

사라지는 통증에 킬리언은 안도감을 느꼈다.

“킬리언,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아, 아니야. 괜찮아.”

자신을 걱정스럽게 올려다보는 리제에게서는 풋풋한 제비꽃 향이 났다.

‘그래, 은은한 제비꽃 향이 좋아. 진한 장미 향 따위는 역겨울 뿐이지.’

그런 생각을 곱씹자 머리가 한결 더 개운해졌다.

“정말 괜찮아, 리제. 아침부터 재수 없는 여자를 보고 왔더니 잠깐…….”

“에디트를…… 만나고 왔어요?”

“허튼 생각 말라고 경고하고 왔지.”

“킬리언!”

“심한 말을 한 건 아냐. 그냥…….”

킬리언은 자기가 왜 에디트의 방에 들른 건지, 지금으로서는 산뜻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리제 옆에 있다 보니 그런 이유 따위야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 여자는 리겔호프 백작이 들여보낸 첩자일 뿐이야. 원망을 하려거든 제 아비나 원망하라지.’

킬리언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에디트의 슬픈 눈빛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지우려고 노력했다.

* * *

킬리언이 다녀가고 난 뒤, 나는 며칠간 그의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몰두할 만한 일을 찾아다녀야 했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면 금세 킬리언이 내뱉던 차가운 말들이 내 심장을 죽죽 내리긋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이럴 땐 밖으로 나가야 해.’

전생에도 기분이 조금 우울하면 큰 텀블러 가득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채워 넣은 뒤 무작정 밖으로 나가 걸었다.

특히 대형 몰에 가는 걸 좋아했는데, 윈도쇼핑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을 구경하다 보면 기분 전환이 되곤 했다.

18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