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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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우연이었습니다. 막 들어가려고 하는 찰나에 그런 장면이 펼쳐져서…… 제가 끼어들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뿐입니다.”

“그랬던 것 치고는 저를 엄청난 탕녀로 몰고 가시던데요.”

“그건…….”

“킬리언. 혹시, 질투해요?”

당황하는 킬리언의 모습이 재미있어서 나는 실실 웃으며 그를 놀렸다.

그런데 방금까지 우물쭈물하던 그가 갑자기 내게 시선을 고정하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예. 사실은 질투했습니다.”

“네?”

“당신에 대한 소문이 워낙에 안 좋았고, 정숙한 성인 남녀라 하더라도 단둘이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정분이 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걱정을 좀 했습니다.”

“아아…….”

“처음엔 리넌이 걱정돼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엔…… 그래요, 리넌에게 질투를 좀 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니 우리의 식탁 주변이 지나치게 적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목으로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만큼.

“이제 호기심이 좀 풀리셨습니까?”

“아, 네.”

“그럼, 식사를 마저 하는 게 좋겠군요. 음식이 식겠습니다.”

“그, 그러네요!”

이상하게 가슴이 쿵쾅대서 방금까지 돌던 식욕도 싹 사라진 상태였지만, 내 당황을 들키지 않기 위해 억지로 음식을 입 안에 밀어 넣었다.

‘쟤, 갑자기 왜 저래?’

오페라 데이트가 뭔가 큰 변화의 기점이기는 했던 모양이다. 갑자기 이렇게 솔직한 태도라니…….

하지만 이 세계의 뭣 같은 ‘원작의 흐름’을 아는 나로서는, 그의 변화가 반갑기보다는 당황스럽고 의심스러웠다.

애초에 물어보려고 했던 것을 물어야 할 때인 것 같았다.

“킬리언.”

“네, 말씀하십시오.”

“저기…… 갑자기 왜 이러는 거예요?”

“제가 뭘 말입니까?”

킬리언은 일단 살짝 빼기로 한 모양이었지만 나는 흐지부지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저랑 시간을 보내고, 저한테 솔직해지는 거 말이에요.”

“그게 뭐가 이상합니까? 부부라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우리가 여태 보통 부부 같지 않았으니까 드리는 말씀이죠. 더 말을 돌리려고는 하지 마세요.”

내 확고한 의지에 킬리언도 적당히 묻어둘 희망을 버린 듯 커틀러리를 내려놓았다.

“당신을…… 좀 더 잘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알아야겠다고요?”

“늦었다는 건 인정합니다. 제가 그동안 유치하게 굴었다는 것도.”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에요.”

“지금부터라도 당신에 대해 알아가고 싶습니다. 물론…… 당신에 대해 완전히 신뢰하는 건 아닙니다. 아직도 지난 사건들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당신이니까요.”

“그거야 그렇겠죠.”

“하지만 지금은, 당신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아니었기를 바랍니다.”

킬리언의 두 눈에 고뇌하는 듯한 빛이 어른거렸다.

그가 나를 믿기로 했다고 한 것도 아닌데, 가슴이 쿵쿵 뛰었다.

‘희망의 빛이 점점 밝아오고 있어!’

어딘가에서 상투스가 울려 퍼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킬리언은 지금, 나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진짜 에디트 루드윅에 대해 알아가고 싶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내가 살아남게 될 확률은 상당히 높아졌다.

18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