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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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그들은 이미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제 말 가볍게 듣지 말고, 목숨을 살리고 싶다면 제발 도망쳐요. 여러분만 믿고 있는 동생들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클리프 루드윅은…… 여기 있는 사람, 그 누구도 살려두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일이 끝나기 전에는 돈을 못 받는다고. 우리, 아직 착수금밖에 못 받았거든.”

조바심이 다 났다. 이대로라면 내게 작은 호의를 베풀어준 이들마저 클리프의 잔혹한 칼날 아래 스러질 것이다.

전생이든, 현생이든 내게 호의를 베풀어주는 사람은 정말 적었기에 나는 이들을 꼭 살려주고 싶었다.

‘지금 나한테 돈 될 만한 게…….’

보석이 달린 드레스도 아니었고 머리 장식도 코르사주와 리본으로 된 것이라 돈이 될 법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걸친 것을 바라보다 잠깐 멈칫했다. 목에 걸린 루비 목걸이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목까지 감싸는 드레스를 입은 덕분에 아직 빼앗기지 않은 것 같았다.

킬리언이 사준 목걸이라 조금 아깝기는 했지만, 어차피 내가 정신을 잃으면 소피아가 채갈지도 모른다.

그 나쁜 년한테 주느니, 이 사람들에게 주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저기요. 제 목에…… 목걸이가 하나 걸려 있어요.”

“엉?”

“질 좋은 루비와 금줄이에요. 갖다 팔면 꽤 돈이 될 테니, 그거 갖고 도망치세요.”

두 남자는 또 서로 마주 보며 머뭇거렸다.

“소피아가 오면 끝이에요. 어서!”

내 재촉에 날 묶은 남자가 내 드레스의 목 부분을 조심스럽게 걷어내고는 목걸이를 뺐다.

“그거 갖고 바로 도망치세요. 저한테 호의를 베풀어주신 분들이 죽는 걸 바라지 않아요. 어서 가세요. 서로 갖겠다고 싸우지 마시고요!”

그들은 얼결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목걸이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방에서 나가기 전, 나를 한 번 돌아보았다.

“저, 저기…….”

“네?”

“크흠…… 행운을 빌게.”

수줍은 기색마저 느껴지는 그 인사에 나는 옅게 웃었다.

원작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을, 이름도 없는 엑스트라.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사이좋은 동생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어쩌면 내 목숨을 구할 수도 있는 호의를 받았다.

“두 분의 행운을 빌어요.”

그리고 그들이 나가자마자 멀리서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타깝게도, 여자 목소리였다.

“도대체 여자 하나 데려다 놓는 데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거야?”

대놓고 용병들을 하대하는 소피아의 목소리에 아까 그 두 사람이 내게 호감을 가져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공공의 적이 있으면 공감대 형성이 쉬운 법이지.’

소피아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부분이려나.

“아, 아하하! 까칠하게 굴지 말라고. 귀족 아가씨가 하도 예뻐서 좀 구경하느라고 말이야.”

“그따위 게 뭐가 예쁘다고 호들갑이야? 누가 촌놈들 아니랄까 봐.”

내가 용병이었어도 기분이 나빴을 것 같다.

어쨌든 두 남자는 날 생각해 준 것인지 소피아의 화를 돋우지 않고 빠르게 사라졌다.

난 그들이 이 길로 곧장 도망치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무 문이 벌컥 열렸다.

“후후. 꼴 좋구나. 그러니 셰인 님께서 마지막 기회를 주셨을 때 잡았어야지. 멍청한 것.”

나를 백작가의 세탁 하녀보다 못한 존재로 대하라는 셰인의 명령 때문인지, 소피아는 장난으로라도 내게 존대하지 않았다.

18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