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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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언 녀석은 그 여자에게 몸정이라도 든 모양입니다만, 공작가의 처벌이 고작 그런 것 때문에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킬리언이 보기보다 속정이 깊기는 하지만, 가문의 중대사를 사소한 감정으로 망칠 녀석은 아니다.”

“하지만……!”

“너야말로 지금 좀 감정적으로 보이는구나. 리제는 무사히 돌아왔으니 흥분하지 마라. 킬리언을 더 자극하는 꼴밖에 되지 않으니.”

클리프는 결국 더 의견을 밀어붙이지 못하고 한발 물러섰다.

그리고 리겔호프 일가와 그 측근들이 처형장 한가운데 무릎 꿇려지는 사이, 킬리언이 처형장에 들어와 공작과 클리프가 선 쪽으로 다가왔다.

“왔느냐.”

공작이 무거운 목소리로 킬리언을 맞았다.

며칠 만에 돌아온 킬리언의 몰골은 언뜻 보기에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눈 밑에 그늘이 진 데다 수염도 지저분하게 난 상태였다. 그사이에 살도 빠진 듯 광대와 턱선이 더 도드라졌다.

“에디트는 어디 있습니까?”

“이제 곧 들어올 거다.”

그때 마침 처형장의 한쪽 문이 열리더니 에디트가 기사들의 뒤를 따라 걸어 들어왔다.

동시에, 에디트를 발견한 킬리언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에디트!’

거리가 먼 데다 기사들 틈에 가려져 그녀의 상태를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제대로 걷는 것마저 힘에 부치는 듯 휘청대는 몸을 보면 몸이 심하게 상한 것 같았다.

웰슬리의 별장에서부터 폭행 내지는 고문을 받았을 에디트이니, 지금 제 힘으로 서 있는 것부터가 놀라운 일인지도 모른다.

킬리언은 당장이라도 에디트가 저 리겔호프 인간들로부터 폭행당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지만, 처형을 앞둔 처형장의 분위기는 킬리언이 함부로 나설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공작은 무릎 꿇린 리겔호프 백작 일가를 향해 말했다.

“영지전으로 끝냈다면, 네놈들을 굳이 내 손으로 죽이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공작가에 리겔호프 백작가의 처분권이 주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역모에 연루된 가문을 처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황제의 권한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연약한 여자들을 납치해 인질로 쓰려고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황제는 이례적으로 처분권을 공작가에 내려준 것이었다.

“귀족의 명예를 안다는 놈들이, 비겁하게 여인들을 납치해? 그러고도 너희가 공작위를 빼앗겼다고 불평할 자격이 있나?”

스릉, 하는 소리와 함께 루드윅 공작의 검집에서 검이 뽑혀 나왔다.

“리겔호프의 이름을 단 것들은 전부 목을 치겠다! 잘린 목은 황궁으로 보내 다른 반역자들의 목과 성벽에 걸리게 하고, 나머지 시체는 산에 버려 짐승이 뜯어 먹게 놔두어라!”

벼락같은 명령이 떨어지자 처형장 한쪽에 선 처형관들이 날이 선 도끼를 새로 잡아 쥐었고, 앉아 있던 죄인들 사이에서 비명과 울음소리가 터졌다.

그 꼴을 내려다보고 있던 공작은 시선을 돌려 킬리언을 쳐다보며 한 가지 예외를 두었다.

“다만, 에디트의 처분은 킬리언에게 맡기겠다. 에디트가 죄인인 것은 사실이지만, 킬리언의 아내인 것도 사실이니까.”

그 말에 클리프가 다시 ‘아버지!’ 하고 낮게 불렀다.

공작은 못마땅해 보이는 클리프와 차가운 표정의 킬리언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말했다.

“다른 이가 에디트의 처분을 결정하는 것은 킬리언에게 실례일 듯하구나. 만약 킬리언이 에디트를 살리겠다고 결정하더라도 그 뜻은 존중하겠다. 물론, 그 책임 역시 킬리언이 져야겠지만.”

그리고 공작은 한 발짝 물러서서 킬리언에게 길을 내주었다.

킬리언은 검 손잡이를 꽉 쥔 채 에디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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