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인다.또 보인다..
그 남자가 또 나타났다. 저 멀리서 또 내게 걸어온다. 희미한 얼굴, 보일 듯 말듯한데...
그때 내가 떨어진다.
"야 민윤서! 지금 몇 신 줄 알긴 아냐?!"
그래.... 침대에서 떨어진 나는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을 끄며 바닥에서 일어나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갔다.
"이게 어딜 다시 기어가! 빨리 학교 갈 준비 안 해?!!"
짝. 궁뎅이를 한번 찰싹 맞고 엄마에게 귀를 뜯기듯이 끌려가 밥상에 앉혀졌다. 아 진짜 성질 하고는.
"이제 일어났냐?"
"아 오빤 왜 나 깨워주지도 않았는데! 엄마한테 또 맞았잖아!"
소리를 빽 지르는 나를 피식 하며 웃는 민윤기 저 망할 놈. 어쭈..교복까지 다 빼 입고 지 혼자 갈 준비는 다해놨네.
"아침 일찍 애들이랑 농구 하다 왔지. 첫날인데 오빠가 같이 가줄게"
"아니 언제부터 그리 열심히 하셨다고~? 방학 때 늘어져 자기만 한 사람이"
"그래? 그럼 너 혼자와~"
"아 알겠어 기다려 쫌!"
그렇지.. 내가 민윤기 저 인간을 이길 수가 없지. 나보다 더 비아냥거리는 오빠를 한대 퍽 치고 고양이 세수와 체육복을 걸치고 짧은 머리를 모자에 푹 눌러쓰고 밖으로 나갔다. 엄마와 오빠의 잔소리는 곱게 무시하며.
"저..저저 미친년 교복을 입고 가야지 교복을!! 야!"
"야! 엄마 말 좀 들어라!"
이미 멀찌감치 뛰어온 날 멱살을 잡으며 세워놓은 건 다름 아닌 농구 선수 존내 빠른 울 오빠였다.
"너 이러고 갈 거냐?"
"아 그럼 안되냐?"
"자꾸 개겨라. 내가 선도부장이었는데 너 같은 애들은 학교에 못 들어오게 했어. 빨리 갈아입고 와."
"이미 늦게 생겼구먼! 효정이도 나 기다리고 있다고!!!"
"하 진짜"
인상을 쓰며 머리를 긁어대는 오빠를 뿌리치고 나는 우리 집 옆 골목으로 빠져 바로 나오는 내 고등학교를 향해 뛰어갔다.
"효정아!!"
"윤서야!!!.....헐;"
정문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뽀얗고 긴 생머리의 교복까지 깔끔하게 입은 저 여인. 날 보자마자 반가워한 것도 잠시 인상을 구기는 저 샹년은 내 10년 지기 친구 송효정. 너라도 날 반겨야지 이년아....
"너 꼴이...왜이래... 교복 어따 팔아먹었니?"
"너는 뭘 그리 치장하고 왔냐 흐미 더워죽겠구먼"
"뭐래 얘가. 너처럼 그렇게 추잡하게 입은 년보다-... 어어 안녕하세요 윤기오빠 ^^;;"
얘가 이렇다. 단언컨대 송효정의 성격을 아는 이는 나밖에 없을 것이다. 내게 욕을 하려다 오빠를 보고서 바로 청순모드로 바꾸는 년...어휴 이미 익숙해 진지 오래다.
"어 안녕 효정아. 민윤서 너 따라와"
"아 진짜 또 왜!"
"너 그렇게 하고 못 들어간다니깐?"
"들어갈 수 있다니까!!"
"야..야!!"
나는 오빠의 팔을 또 한번 뿌리치며 당당하게 정문을 향해 나섰다. 물론 날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도 다 무시하며..
윤기오빠는 이미 포기한 듯 한숨을 쉬고 내 뒤를 조용히 따랐다. 효정이도 거울을 한번 확인하고 윤기오빠 옆에 나란히 걸었다.
"거기 모자 쓴 학생."
모자? 여기 봐도 저기 봐도 모자는 결코 없었지. 나 말하는 건가?
"그래 너. 너 말고 누구 있겠어? 너 그 차림으로 지금 들어가겠다는 거야?"
옆을 보니 훤칠하고 잘생긴 선도부 같은 학생이 날 보며 말하고 있었다. 아 어떻게 하지..
"석진이형! 아까 왜 못 오셨어요?"
그때 날 의도치 않게 구원해준 나의 민윤기 오라버니! 처음으로 오늘 예뻐보였다. 그래 지금이야. 어서 빨리 도망가야-
"아 윤기구나. 형이 아까 아침부터 여기서 이렇게 입은 애들 잡고 있었어. 첫날이라 더 심하네. 근데 여자애는 애가 처음이다."
....도망가려 했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져서 걸음을 멈췄다.
"아...쟤요..?;"
"응. 아는 애야?"
"설마요."
하..하하하 허탈하게 웃다 민윤기를 째려보았다. 자기만의 특유의 비꼬는 표정과 함께 '내가 말했지?' 라는 눈빛을 보냈다. 어휴 얄미워 죽겠네 진짜.
"저기..선배님~ 제 친구가 오늘 급하게 오다가 옷도 제대로 못 입고 왔네요..하하; 오늘 하루만 봐주시면 안될까요?"
효정이가 눈웃음을 살살 치며 선배에게 부탁을 했다. 야.. 저런 딱딱한 놈들한텐 그래도 안 통해-
"아.. 뭐..첫날인데 괜찮아. 신입생들이고 뭐.."
허.... 나 참. 아까부터 계속 어이가 없네? 선도부도 남잔 가봐?
"하 참... 저기-"
"꺄!!!"
허탈한 나머지 나는 마음을 먹고 선도부에게 따질려했던 찰나-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많은 학생들의 비명이 들렸다. 당황스러운 나머지 난 뒤를 돌아보는데
"윤서야!!!!"
쿵.
"아씹...뭐야"
나는 그렇게 그를 처음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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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Fanfiction처음 보는 태형이 였을 텐데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듯이 느끼는 윤서. 태형도 마찬가지다. 설레는 썸을 타는 다정한 정국과 소심한 효정, 하지만 이들도 구면이다. 윤서의 오빠 윤기만이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 이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알 수 없는 형태로 모양이 잡힌다. 도대체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