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시작되는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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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쟤 누구야? 와 존잘."

"까불래 김미연? 또 한눈 판다, 얘."

초췌한 내 모습은 효정이만 안쓰러워하고 김미연이랑 오혁오빠는 서로 티격태격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 존잘이 중요한 게 아니야.... 1부터 4교시까지 김태형에게 충분히 괴롭힘을 당한 나는 더 이상 하루를 버텨갈 힘이 없었으니...

"효정아... 오늘 왜이리 지랄 맞냐"

"인연인 가봐~ 어쩜 그렇게 딱 만나냐. 그것도 짝꿍으로"

송효정을 죽일 듯이 야려 보는 나였지만 얼마 안가 김미연에게 머리통을 맞고 말았다.

"아 샹 왜!"

"쟤 누구냐고!!! 아 오혁 치워봐 손"

"내가 어찌 알아 이년아!!"

"아까 니랑 같이 나왔잖아!!!!!"

뭐? 나랑 같이 나온 놈..?

'이따 봐 나의 짝꿍~♡ 밥 같이 먹을까?'

'꺼지라고!!!!!!!!!!'

'알겠어 알겠어~~ 밥은 나중에 먹기로!'

그때 갑자기 김태형의 마지막 괴롭힘이 생각났다. 김미연이 아까부터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친...

"김..태형"

"이름이 김태형이야? 빨리도 말하네 개년"

"이름 알아서 뭐하게 개년아"

"아 집착 좀 하지마 오혁"

옆 구석 화장실로 슬금 도망쳐 몸을 숨겼다. 아니 저 미친놈은 왜 여기에서도 만나는데!! 여긴 나와 내 친구들의 아지트 같은 단골 분식점인데!! 정말 먹는 것도 방해 받을까 봐 불안이 온몸을 감았다. 쟤가 날 봐서는 안돼..

똑똑.

"아 누구 있어요"

"어 여잔가 여기 남자 화장실인데"

헐. 그러고 보니 김태형 피한다고 막무가내로 들어왔는데...정말 남자 화장실인가? 왜 여긴 칸이 하나밖에 없는 거야!! 기다릴 거 아니야 밖에 사람이.. 그럼 난 어떻게 나가. 아 혼란스럽다. 일단 남자인 척 해야지...

"남자 맞는데요?"

"목소리를 갑자기 까시네요. 찔리나 봐"

저 재수없는 놈은 뭐야...좀 사라져 제발.

"아무튼 일 보세요. 다른데 가야겠네"

오구 재수없는 말 취소. 빨리 나가주는 의문의 남자 덕에 한숨을 돌려 쉬었다. 이러고 계속 있다가는 또 누가 올지도 몰라.. 얼른 나가야지.

"우아아악!"

"여자 맞네"

잽싸게 연 문 앞에는 나와 같은 교복의 잘생긴 사내놈이 턱 있었다. 이 자식 사기 친 건가? 아니 뭐.. 나도 할말 없지만. 아휴 민망해라...

"근데 좀 낯익은데.."

응? 내가? 뭔 소리야? 사내놈 말에 나는 그냥 멀뚱히 서있었다. 얼굴을 자세히 들어다 보는데.. 나도 역시 많이 낯익은 얼굴이었다. 누구지? 어디서 봤지?

"근데 계속 거기 서있을 거에요? 나 일볼 건데"

갑자기 바지를 벗으려하는 놈을 밀치고 서두르며 밖을 나왔다.. 오늘 미친놈 여럿 만나네. 그러고는 나와서 또 미친놈을 만나버렸다.

"어 짝꿍! 여기서 보네?"

제발 모른척해 줘라 제발. 난 너 같은 짝꿍 둔적 없어...

"잘됐다. 이 참에 그냥 같이 앉을까?"

자신의 친구들에게 손짓하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내 자리를 보니 미연이랑 혁이 오빠가 싸우는걸 말리는 효정이뿐이었다. 그치... 네놈들이 날 도와주겠니.

"아..하하. 반갑네 여기서도 보고 ^^;; 근데 어쩌지 나 지금 막 갈려고 했는데..."

"에이 거짓말 치지마 아직 아무것도 안 먹었으면서"

"아니 정말이야! 너무 많이 먹어서 이제 막 갈려고 했던-"

"윤서양! 어서 이거 시킨 거 가져가! 오랜만에 왔으니 김밥 한 줄 더 넣었어~ 친구들이랑 어여 먹어"

오늘따라 왜 아저씨의 친절함이 내게는 독 같았을까. 왜 나에게는 절실한 상황에 쥐구멍도 없을까.. 뻥 진 나를 바라보는 김태형의 표정은 슬슬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화..난건 가? 순간 오싹한 느낌을 받다가 이내 다시 까불까불 하게 밝아진 놈의 태도를 보고 정신을 차리며 자리를 뜨려 준비했다.

"거짓말하지마~ 아무리 싫어도 그건 잘못된 거야"

"아..하하 그러게 내가 오늘 왜 이럴까.. 평소에는 안 이러는데"

"내가 그만큼 좋은 거야? 짝꿍이 하루 만에 변할 만큼?"

"내가 또 밥을 안 먹어서 많이 예민해. 그니까 그런 장난치면 진짜 때릴 수도 있어~"

나의 협박 아닌 협박에 호탕하게 웃는 김태형이었다. 정말 재수없지만 이빨 하나는 가지런하네..

"야 김태태. 빨리 좀 시키자. 배고파 뒤지겠다."

아차.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놈의 패거리는 슬슬 짜증이 나는 표정을 지었고, 가게 안에 부적 사람이 많은 관계로 내 테이블과는 먼 자리에 앉은 김태형과 그의 친구들이었다.

"그럼 이따 봐 짝꿍~ 나중에는 꼭 같이 먹자?"

음식 판을 들고 테이블에 가니 어느새 얌전해진 내 친구들이었다. 또 달달 한 김미연과 오혁오빠였고, 혼자서 화장을 고치는 송효정이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아 강아지 새끼들이 쳐들어와서.. 떨궈내느라"

"뭐? 김태형 말하는 거야?"

"더 많아. 그나저나 화장을 왜 여기서 고쳐. 먹을 것 앞에서 그러는 거 아니라 했지 내가"

"아 맞다. 내가 화장실에 가서 고치려했는데 글쎄 내가 진짜 잘생긴 사람 봤다? 그래서 너무 놀라서 고치지도 못하고 나와버렸지"

주위를 둘러봐도 잘생긴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도대체 이 가스나는 눈이 땅밑에 있나. 어딜 보고 말하는 거지? ....근데 잠깐. 화장실에서 뭐?!

"여자 화장실에 어떻게 잘생긴 사람이 있어 멍청아!"

"뭔 소리야 공용 화장실인데!"

....그럼 아까 난 왜 피한거지? 그 놈은 나한테 왜 사기친거지? 순 변태 아니야? 근데 효정이가 잘생긴 사람을 봤다는 게 그 자식인가?

"아 니네 쫌 닥치고 밥이나 먹자 앙?"

"미연아..너야말로 공공 장소에서 혁 오빠랑 알콩달콩 그러지 말고 밥이나 먹자.."

"헐 효정이 네가 나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미연이 완전 삐쳤다!"

"(켁. 콜록콜록) 야 내 여친이여도 애교는 못 봐주겠다 집어 쳐라"

"아 방금 전까지 잘하기로 했잖아! 잘해라 오혁!"

떡볶이 한입과 우스꽝스러운 내 친구들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 기분은 이내 풀리고야 말았다. 정말 재미있는 놈들이야.

"야 민윤서! 니 혼자 쳐먹을래!"

정.말.로. 재미있는 놈들이야.

밥을 다 먹고 미연이와 혁 오빠는 아직 남은 30분 동안 데이트를 하러 갔고, 효정이는 자신의 반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러 가여 흩어졌다. 혼자서 초콜릿 맛 쭈쭈 바를 하나 들고 포카리스웻 음료를 들고서 농구장을 향했다.

"윤기오빠!"

"여"

오빠를 향해 음료수를 힘껏 던지고 그걸 또 폼 나게 잡아 기다렸다는 듯이 들이마셨다. 목 엄청 말랐나 보네..

"여기가 농구장이구나~ 오는데 한참 헤멨어"

"네가 여기 알아서 뭐하게 운동도 귀찮아하는 자식이"

"오빠 응원하러 올라 했지 이렇게. 싫음 말어"

쿡쿡 웃으며 내 머리를 한번 헝클어놓는 윤기오빠는 정말 내가 오든 말든 상관이 없는 거였다. 그렇다.. 내가 이런 존재밖에 안 된다.

"다리는...? 괜찮아?"

걱정스레 오빠의 다리를 보니 큰 하얀 밴드가 붙여져 있었다. 다시 올라오는 분노의 침착을 하려 했지만 너무 속상해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이 오빠 맷집 센거 알면서도 자꾸 걱정할래? 신경 끄라 임마.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맨날 말만 그렇지. 오빠가 다리가 특히 더 약한데. 오늘도 점심 안 먹었지?!"

"오늘은 신입들이 들어오니까 기다리고 있었지. 어 지금 저기 오네"

또 핑계 대며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오빠를 치고 싶었지만 한 없이 연약한 오빠니까.. 내가 참아야지. 우리 학교는 농구부가 가장 알려진 곳이니 첫날부터 신입이 많이 들어오겠네. 우리 오빠보다 잘할 사람은 없겠지만 말이야.

"나는 수업 있으니까 들어간다~ 밥 좀 챙겨먹어라 민윤기"

"착하네 시간도 잘 지켜 들어가고. 너는 작작 먹고 댕기라 알았나?"

곱게 오빠의 잔소리를 씹고 (내가 더했지만) 씩씩하게 다음 수업에 들어가는 성실한 나였다. 오빠는 언제나 나의 에너지. 나의 활력소. 정말 기분이 팍 좋아져서 교실 안에 들어갔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이 아이 저 아이한테 인사하는 나는 정녕 미친년으로 보였을 거다.

"굿애프터눈 김남준"

".... 어디 아프니 윤서?"

베드 바이브들은 훠이 훠이. 난 이렇게 밝게 지낼 테야. 울 오빠도 힘들어도 저렇게 힘내는데, 내가 더 잘해야지. 암암 그렇고말고.

자리에 가니 김태형은 없었다. 뭐 딱 행동하는 거 봐서는 이미 땡땡이를 칠 기세였으니 이젠 좀 편하겠군. 아 잠자면 안되지. 수업 들어야지 수업.

나는 혼자 그렇게 자아자찬을 하며 나머지 수업들을 기분 좋게 들을 수 있었다.

고향Where stories live. Discover now